부울경을 빛낸 출향인 황찬현 법무법인 클라스 대표·전 감사원장

– 30대 판사 시절 컴퓨터에 매료
– 법원 직원 대상 MS DOS 강의
– PC 판례 검색 프로그램 개발 등
– 개인취미로 시작해 업무서 두각

– 요직인 서울중앙법원장에 이어
– 朴·文 정부 걸쳐 감사원장 재직
– 임기 4년 채우고 2017년 퇴임

– “메가시티 위해 자원·인재 모으고
– 서울 흉내 대신 독자적 길 모색을”

시작은 오래전 작은 곳에서였다. 공대를 가려다 색약 진단을 받고 그 꿈을 접었던 30대 젊은 판사 황찬현. 진주법원에 근무하던 중 서울 집으로 가는 길에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애플컴퓨터 사업을 하다가 망했다고 했다. 그와 헤어지기 무섭게 한달음에 세운상가로 달려갔다. 국내 유일의 전자상가였다. 그날부터 그는 컴퓨터에 푹 빠져들었다. 얼마나 신이 났는지 주말 귀가 전 무조건 컴퓨터 가게에 들렀다. 타고 난 끼가 발동했다. 컴퓨터 본체를 능수능란하게 조립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곧이어 데이터베이스, 클리퍼와 비쥬얼베이직 소프트웨어에 익숙해졌다. 그렇게 컴퓨터 전산에 미치듯 빠져들었고 법원에서 판사와 직원 상대로 당시 컴퓨터 운영체계(MS DOS)를 강의하는 컴퓨터 강사가 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우리 사회는 비대면 화상회의가 일상화됐다. 지금으로부터 26년 전인 1995년 그는 울릉도와 경주 사이 원격화상재판 시스템을 구축하고 직접 모의재판에 나섰다. 무슨 쓸데없는 일을 하느냐는 질책을 뒤로하고 그의 질주는 거침없이 계속됐다. 마침내 법조계에서 인정받는 컴퓨터 법조 전문가가 됐다.

그가 써 내려 가는 모든 것이 업적이 되고 역사가 됐다. 급여 관리와 초보적인 송무 업무 자동화에 머물러 있던 법원의 전산화는 종이서류를 완전히 없애는 종합정보시스템 구축에까지 이르렀다. 숱한 난제를 만났다. 그때마다 그는 훨씬 위 선배 판사에서 동료와 후배까지 열정적으로 설득했다. 수천억 원의 예산이 소요된 사법행정 전산화를 이끌며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판사로 자리 잡았다. 훗날 그 일로 국가 훈장을 받았다.

그는 1953년 경남 마산시 월영동(댓거리)에서 태어났다. 일곱 마지기 논농사로 부모님과 4남매(3남 1녀)가 힘들게 살았다. 일본 오사카에 살다가 해방을 맞아 귀국한 아버지는 글을 읽지 못했다. 6·25전쟁 중 거제도로 피난 갔다가 징집돼 군에 입대한 큰형은 그가 태어나던 무렵 제대했다. 무려 스무 살 위다. 지금도 고향을 지키고 있다. 월포초등학교와 마산중·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와 대학원을 거쳐 일찌감치 판사의 길로 나섰다. 긴 세월을 넘어 컴퓨터와 프로그래밍에 빠져 젊은 시절을 보낸 그는 2013년 4월, 판사로서의 핵심 요직인 서울중앙지방법원장에 올랐다. 채 8개월이 안 된 그해 12월, 이번에는 제 23대 감사원장에 올랐다. 임기가 박근혜 문재인 두 대통령 재임 기간에 걸쳤다.

원스톱 서비스를 내세우며 2018년 4월 새로 법무법인을 만들고 대표변호사가 됐다. 사법부 디지털화와 감사원 개혁을 통해 대한민국의 경영과 구조 전반을 들여다본 그다. “기존 방식이 아닌 부울경 나름의 방식으로 경향 각지의 인물을 모아 새로이 미래를 열어 갈 것”을 주문하는 그를 서울 테헤란로 아이콘빌딩 9층의 법무법인 클라스에서 만났다.

-사법행정 디지털화의 선구자다.

▶법조인 대관에도 그렇게 기재돼 있다. 평소 기계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공대로 진학할 생각이었으나, 눈이 나빠 진로를 수정했다. 판사 경력 5년 차 무렵인 1986년 우연한 기회에 당시 화제가 되고 있던 PC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 한 달 판사 본봉 수준의 애플 컴퓨터를 구입했다. 매뉴얼을 놓고 재미 삼아 시작했다. PC 레벨의 판례 검색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법원행정처 전산담당관으로 2년8개월 근무했다. 법원의 내부 네트워크 구축 및 업무용 프로그램의 개발 관리자가 되었다. 프로젝트 관리 책임자다. 하드웨어의 구입 및 구축, 업무용 프로그램 개발, 네트워크 구성 및 구축, 전산인력 관리를 총괄했다. 사법개혁의 사회적 열망에 따라 영상재판시스템도 구축했다. 법원행정처 법정심의관으로 등기전산화 사업을 수행했다. 1998년 10월 성공적으로 개통했다. 개인적으로는 클리퍼에 깊이 들어갔다. 그리고 2006년 비쥬얼 베이직으로 중급까지의 프로그래밍을 했다. 취미가 업무에 적용되고 시대 상황의 요구를 만나 전문가의 길에 서게 된 셈이다.

-컴퓨터 전문 판사가 감사원장이 됐다.

▶청년 시절 후회 없이 컴퓨터와 사법행정의 디지털화에 빠져 지냈을 뿐 별다를 것 없는 판사의 자리에서 30여 년을 지냈다. 첫 법원장(대전지법원장)이 된 것은 2011년 5월이다. 그 후로 서울가정법원장,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 됐다. 대개 판사가 그렇듯 사람과의 친소가 아닌 사안의 본질을 보려고 애썼다. 누군가는 나의 삶을 지켜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열정으로 가득했던 그때의 열매와 몇몇 법원장직 수행의 경험을 더해 감사원장 자리에 오르게 된 것 같다. 감사원은 헌법(제97조)과 감사원법(제20조)의 규정에 따라 국가 및 국가기관과 법률이 정한 단체의 사업 전반에 대한 검사 및 감사를 수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수사 및 징계 요구 등을 한다. 대통령 소속 기관임에도 독립적인 그 입장과 업무로 인해 세월호 사건뿐만 아니라 국가의 중대사 관련 논란의 중심에 종종 서기도 한다. 사법부에서 전산화를 주도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감사의 디지털화와 감사관 교육체계, 감사 결과에 대한 소명 절차 등을 정립했다. 감사원의 시스템은 물론이고 감사원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고 취임했으나 청문회 때 요청받은 것을 과감하게 실천에 옮겼다. 감사관 교육을 강화하고 내부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감사를 못 하게 했다. 피감인과 기관에 소명 기회를 주도록 감사 과정을 보완했고 소명 기회를 공식적으로 부여했다. 회의 시스템을 전산 회의로 바꾸었다. 법원의 전자 소송처럼 전자 감사제를 도입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람으로 불린다.

▶문재인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22회)다. 사법연수원 시절 비교적 사이가 좋았다. 그 후로도 그는 부산에서 변호사로, 나는 주로 서울에 살며 판사로 있어 자주 만날 수 없었다. 그래도 한두 번 전화로 연락한 적이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임기 중 감사원장에 임명돼 ‘박근혜 정부 사람’으로도 불린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과는 인연이 전혀 없다. 두 정권에 걸쳐(문재인 정권 7개월) 4년 임기를 채우고 2017년 12월 1일 퇴임했다.

-세월호 사건과도 자유롭지 못한데.

▶외압에 의해 청와대 감사를 무마하고 감사보고서를 축소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 세월호 특별수사단은 이와 관련, 축소압력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2021년 1 월). 그러나 유가족은 거세게 반발했다. 그 일로 검찰의 조사를 단단히 받았다. 이 모든 과정이 산 자로서 겪어야 할 의무 아니겠는가. 법의 판단은 검찰과 법원이 할 것이고 유가족에게 치유와 위로가 되는 정확한 사실 규명을 위해서라면 능히 감당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유족이 겪는 고통을 치유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

-31년 판사를 지냈다.

▶내 이름이 들어간 재판이 1만 건이다. 최선을 다한다고 했으나, 때론 여러 가지로 돌이켜 볼 사안도 있다. 그렇지만 판사라는 직업을 가진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고 판사로 산 삶도 충분히 만족스럽고 감사하다. 자신의 철학과 소신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는 직업 아닌가. 외풍이 거의 없다. 옳다고 생각하면 옳은 방식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 대단한 행운이다. 장기간 근무한 관계로 민사 형사 행정 조세 공정거래 등 여러 분야를 재판했고, 형사재판 또한 10년 이상 했다. 재판할 때는 고함을 지르지 않는 대신 판사의 권위는 확실히 지킨다. 전산 사업 추진하며 만들어진 강한 이미지가 계속 이어졌다. 부임하는 곳마다 “너희는 죽었다”는 뒷얘기가 있었다.

-법무법인 클라스는.

▶약속을 어기고 제 3자에게 근저당권을 설정해 주는 ‘이중저당’에 대한 기존 판례를 바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심장초음파 촬영 행위는 의사의 지도 감독 아래 간호사가 행할 수 있는 진료보조행위라는 판결을 이끌었다. 소속 변호사의 정년이 없고 전관 영입보다 글로벌스탠다드에 두고 있다. 법무법인 간 인수합병(M&A)을 통해 경쟁력을 제고하고자 한다. 부티끄로펌이 아닌 종합로펌을 지향한다. 현직 출신이 많아 송무 분야가 차별적 우위에 있다. 클라스(CLASS)라는 이름은 격이 다른 차별화된 실력을 가진 로펌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항상 연구하고 학습하는 학급이라는 의미도 있다. 변호사 69명을 포함해 총 136명으로 구성돼 있다.

-부울경 메가시티는 어떻게 생각하나.

▶서울 흉내 내지 말고 무엇인가 다른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오래전 부산을 떠받쳤던 합판과 신발같이 지역 여건에 맞는 것을 찾아야 한다. 모방하려고 하지 말고 새롭게 찾아내야 하는 뜻이다. 지방자치의 강화는 좋으나 배타성은 극복해야 한다. 세상천지 자원과 인재를 모아야 하고 내부에서 못하면 외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해야 한다.

선행도시, 예컨대 서울을 모방할 것이 아니라 서울과 다르면서 선도적인 도시로 나가는 방향이 우선일 것으로 생각된다. 법조 분야를 두고 말하자면 아무래도 지역적 측면과 산업화의 정도에 종속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특징에 맞는 대응이 필요하다.

◇ 황찬현 대표변호사는

▷1953년 생 ▷마산 출생 ▷마산월포초, 마산중, 마산고 졸업 ▷서울대 법대 졸업(1976) ▷서울대 대학원 법학석사(1979) ▷경력: 제22회 사법시험 합격(1980), 사법연수원 12기 수료(1982), 서울고등법원 판사(1993), 대전지방법원 부장판사(1998), 수원지방법원 부장판사(1999),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2003),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2005),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2006),대전지방법원 법원장(2011), 서울가정법원 법원장(2012), 서울중앙지방법원 법원장(2013), 감사원장(2013.12), 법무법인 클라스 대표변호사(현)(2018~현재) 한국정보법학회 회장(1996~2005)▷주요논문:저작권법 제93조에 관한 판례평석(1996. 정보법학),컴퓨터프로그램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현행법의 규정과 입법론적 검토(1999.정보법학)

김일출 Systems Wisdom Korea 대표ⓒ국제신문(www.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