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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대통령제 권력남용 막으려면 인사권 견제장치 필요

2022-02-04(금)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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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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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법무법인 클라스 사무실에서 문화일보와 가진 ‘3·9 대선 시대 정신을 묻다’ 인터뷰에서 “이번 대선의 시대 정신은 공정과 통합으로, 이를 통해 선진국을 향해 비상하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성호 기자

 3·9 대선 시대 정신을 묻다 – ⑤ 이강국 前 헌법재판소장

“각 캠프에 들어간 사람들은 임명직 공직 맡지 않겠다고 선언하라

새 정부, 특정 이념에 매몰되지 말고 ‘國利民福’ 국정 좌표 삼아야

헌법 기본가치 존중하고 민주주의 수호 위해 법치주의 확립 필요

이념적 대결 뛰어넘어 ‘따뜻한 보수’·‘겸손한 진보’로 거듭나야”

인터뷰 = 김충남 사회부 부장, 정리 = 김규태 기자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이강국(77) 전 헌법재판소장은 지난 2013년 퇴임한 뒤 근 10년 만에 첫 언론 인터뷰를 갖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전 질문지에 답변한 내용을 출력한 제법 두툼한 서류를 건네줬다. ‘정답지’는 받아놨지만 ‘헌법을 쓰는 시간(김진한·2017년)’이라는 책 이야기부터 시작된 인터뷰는 금방 2시간가량 흘렀다.

이 전 소장은 “대법관과 헌재 소장을 지낸 헌법학자로서 견해가 아니고 사회 원로로서 우리 사회가 이렇게 가면 안 되겠다는 우국충정에서 답변을 쓰고 인터뷰에 응한 것”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실제로 꼿꼿한 조선 시대 선비와 마주 앉아 대화한 느낌이었다. 그는 ‘사회적 모성(母性)주의’ ‘민족적 공동운명체’ ‘국리민복(國利民福)’ ‘사회연대의식’ 등 추상적이지만 함의 깊은 개념을 끄집어내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이라는 화두를 풀어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핵심인 인사권 남용을 막을 구체적인 방법론도 제시했다. 아울러 이번 대선을 통해 국민주권과 자유, 평등, 정의 등 헌법 정신 공유와 법치주의 확립이라는 국가적 컨센서스 형성을 기대했다.

그는 여담으로 44년 법관 생활 중 폭넓은 ‘개명(改名) 신청권’ 인정과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소수 의견 제시를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고 했다. 마음에 안 드는 이름을 바꾸고 싶은 것은 국민의 행복추구권,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은 종교와 양심의 자유라는 헌법 가치에서 나온 것이었고, 그 밑바닥에는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존중하는 헌법 정신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 전 소장은 현재 법무법인 클라스의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질의응답은 서면 답변과 현장 인터뷰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직조했다.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독일 철학자 헤겔은 ‘시대정신(Zeitgeist)’을 특정한 시대를 관통하는 이념 또는 염원이라고 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공정’과 ‘통합’이 돼야 한다. 공정은 공평하고 올바름을 말한다. 공정에 이르는 길은 결코 쉽지 않지만, 이에 접근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영원한 기본 가치다. 또한 이번 대선을 통해 사분오열된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을 치유하고 봉합해 국민 통합을 이뤄내야 한다.”

―왜 공정과 통합인가.

“공정은 5년 전 촛불시위에서 표현된 국민의 엄숙한 명령이었다. 그런데 촛불시위로 탄생한 현 집권세력은 이념 과잉과 진영 논리에 빠져 독선과 ‘내로남불’ 등 위선적 행태로 극심한 분열과 갈등을 불러왔다. 결국 공정이라는 시대정신은 행방불명됐다. 특히 유례없는 부동산 폭등과 청년실업 등으로 인한 국민의 허탈감과 무력감, 부의 불평등과 양극화로 인한 세대·계층 간 갈등에 이념과 지역 간 대립까지 더해지면서 민족 공동체로서의 기본 가치와 방향까지 위험해졌다. 모든 갈등과 대립 요소들을 용광로에 태우고 녹이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도 포용하면서 우리 모두의 공동선(共同善)을 추구하는 민족적 공동운명체로 새롭게 통합해야 한다.”

―모든 대통령이 취임 일성으로 국민 통합을 내세웠는데, 왜 분열과 갈등은 더 심화하는가.

“우리 사회의 분열 중 가장 비난받아야 할 부분은 보수, 진보의 극단적 이념 대립과 사생결단식 대결 상태에 있다. 이념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과 행복을 위한 이론이며 수단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념은 정치세력 간 정권 쟁취를 위한 수단일 뿐, 일상생활에 쫓기는 일반 국민은 별 관심도 없다. 세계 경제사적 흐름에서 보더라도 탐욕적 보수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보수 이론은 이미 역사적 유물이 됐다. 진보그룹의 개혁과 혁신도 국민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용인할 수 없는 속도와 그에 따른 제재와 단죄에 의존하다 보면 국민에게 불안과 혼란, 피로감만 줄 뿐 성공하기 어렵다. 이제 보수는 사회 공동체 전체를 보살피는 ‘따뜻한 보수’로, 진보는 역사 앞에서 역지사지하는 ‘겸손한 진보’로 거듭나야 한다.”

―이념적 공존은 가능한가.

“우리나라는 남북 긴장 상태가 높은 상황에서 사상의 자유가 서구 사회보다 제한적이어서 보수와 진보는 현실적으로 그리 큰 차이가 없다. 이제는 우리도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 독일의 기독교민주당과 사회민주당과 같은 보수·진보의 선진적인 정치 질서를 재정립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정부는 특정 이념이나 주의·주장에 매몰되지 말고 국민의 자유와 인권,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실용주의, 실사구시 기반 위에서 사회구성원 전체의 화해를 도모하고 통합해 공동체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또한 우리 사회의 모든 부분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사회적 모성주의’를 추구해야 한다.”

―우리 정치 구조 퇴행의 근원을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찾는 주장이 적지 않다.

“대통령 중심제가 미국에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는데 미국 외에 성공한 나라가 한 군데도 없다. 비교헌법학자인 독일의 뢰벤슈타인은 미국에서 대통령 책임제가 성공한 이유로 첫째 연방제 국가, 둘째 정당 방침에 귀속되지 않는 의원들의 원심력, 셋째 독립적이고 강력한 언론, 넷째 독립적인 사법권을 들었다. 우리나라는 여기에 해당하는 조건이 하나도 없다.”

―대통령 4년 중임제, 분권형 대통령제, 내각제 등 여러 대안이 제시되는데.

“세계 헌정사적 발전 과정이나 이론상으로 보면 내각제만큼 민주적인 정치체제가 없다. 그런데 1960년대 초 장면 정부의 혼란과 무질서를 경험한 우리 국민은 내각제는 안 된다고 한다. 이런 배경 아래서 당분간 내각제로는 어렵고, 과도기적으로 분권형 대통령제, 이원정부제라는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또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막으려면 인사권을 제한하고 견제하는 장치들을 만들어야 한다. 현행 헌법에 인사청문회도 있고, 고위공직자를 국회에 불러 답변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도 있다. 사안이 생길 때마다 국정조사권을 발동해 대통령이나 행정권을 견제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지금도 그런 제도들이 있지만 잘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이 먼저 유능한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뽑아서 써야 한다. 자기 진영 사람만 갖고 인사를 하다 보면 다른 쪽 사람들은 눈에 안 보인다. 전국의 현자들을 찾아내 권한과 책임을 줘야 한다. 대통령은 사람을 판결할 수 있는 전인적인 능력도 있어야 한다. 독서도 많이 해야 하고, 사람도 많이 겪어봐야 정확한 안목이 생긴다. 옛날 박정희 전 대통령은 머리맡에 꼭 수첩을 두고 잤다고 한다. 누워 있다가도 ‘젊은 친구가 브리핑을 잘하더라, 의견이 똑 부러지네’ 하며 얼른 이름을 써놨다고 한다. 인재를 발굴하고 키우겠다는 정성이 없으면 결국 연고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다.”

―대통령 입장에서 도와줬던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지 않나.

“대통령이 개인적 인연으로 중요한 자리에 인사권을 행사하면 그게 바로 제왕적 대통령제 아닌가. 개인적 인연이나 학연, 지연, 혈연 이런 걸 뛰어넘어야 한다. 그런 영단 없이 일국의 지도자가 돼서는 안 되고, 되더라도 역사에 오래 기록될 대통령으로 남을 수 없다.”

―대통령의 의지나 선의가 아닌 구체적인 견제 장치는 없는가.

“대선 캠프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임명직 공직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그런 사람들을 모아서 해야 한다. 선출직은 어쩔 수 없지만 임명직은 맡지 않겠다고 서약해야 한다.”

―여야 정쟁에 대통령과 여당 간 상하관계 등으로 인사권 견제가 쉽지 않은데.

“제왕적 대통령제를 시정하려면 국회든, 정부든 정치적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건강한 중산층이 나서야 하고, 특히 언론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권력 구조 개편을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만약 개헌 작업이 가능하다면 시대에 맞게, 부족한 부분을 모아 앞으로 50년, 100년 가는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 또 대통령제를 이원정부제나 분권형 대통령제로 만들려면 인위적 헌법 개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장 개헌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미국 같은 경우 200년 된 헌법을 갖고 지금도 재판하고 있다. 헌법을 시대에 맞게 해석하고 보완해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7년 헌법 체제’가 시대 변화를 담지 못한다고 하는데, 일리는 있지만 시대 변화나 흐름을 담을 수 있도록 헌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헌법 해석과 적용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헌법 규정들은 나라마다 비슷하다. 중요한 건 헌법의 기본적인 이념과 가치를 존중하고, 그것을 지켜나가겠다는 헌법 수호 의지다. 헌법의 이념과 가치는 자유, 평등, 정의 이런 것이고, 제도적으로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다. 우리 헌법의 가장 핵심 구조이자 핵심 요소이기 때문에 이런 것이 무시되거나 제외된다면 이는 헌법 파괴다.”

―법치주의 구현을 위해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민주주의가 돼야 한다.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가 국민주권, 인간의 자유와 평등, 정의 이런 것이다. 인류 보편적이고 영원한 가치이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중요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 그런데 민주주의 자체는 공허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 자유, 평등, 정의를 법률의 규정이나 법적 조치로 구현할 수밖에 없다.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는 상호 불가분의 관계다. 즉 민주주의는 법치국가의 법질서에 의해 실효성을 갖기 때문에 법치주의 확립을 위해서는 우선 법의 해석과 집행을 좀 더 엄격하게 해야 한다. 동양에서는 법치(法治)보다 덕치(德治)를 상위에 놓고 있는데, 우선은 엄격하고 예외 없는 추상같은 법치의 시대를 경험하는 것이 덕치의 시대를 앞당기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사법의 정치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우리 시대 사법의 역할은.

“정치는 합목적성을 추구하는 국가 작용이고, 사법은 구체적 행위의 합법성만을 심판하므로 그 목적과 작용 메커니즘이 다를 수밖에 없다. 사법이 정치 문제에 깊이 관여하는 ‘사법의 정치화’는 오히려 정치권이 사법을 장악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할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사법은 입법권과 행정권의 권력 남용과 위법 행위를 헌법과 법률에 따라 독립적, 중립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심판함으로써 권력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본래의 권능 행사에 충실할 수 있다.”

―교육제도 개혁을 강조해왔는데.

“우리 사회는 지독한 학벌 사회로, 일류 대학 진학이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하고 패자부활전도 보장되지 않는 위험천만하고 불안한 사회다. 학교에서 예술과 체육 활동 등으로 양보와 협력을 경험함으로써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면서도 공동선을 추구하는 ‘공익적 개인주의’로 무장된 새로운 세대를 길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년들이 꿈과 희망을 키우고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을 수 있도록 학벌 사회의 상징인 대학 제도를 혁파해야 한다. 대선 후보들도 돈 푸는 데만 관심 갖지 말고 교육 개혁에 관한 연구나 공약 등을 개발해 백년대계를 도모해야 한다.”

―차기 정부의 국정 목표와 비전은.

“국리민복(國利民福)과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좌표로 삼았으면 한다. 국가 사회적 쟁점을 특정한 이념에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어느 쪽이 나라에 이롭고 국민의 행복에 이바지할지를 정책별, 사안별로 구체적이고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옳다. 또한 패자부활전이 있는 안전하며 따뜻하고 품위 있는, 합리적인 사회 건설을 목표로 해야 한다. 우선 노사 간 사회적 대타협과 ‘친족 간의 우애와 사랑의 정신’과 같은 전통 미덕을 기초로 사회연대 의식과 사회방위 의식을 고양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적 포용과 관용의 정신으로 공정과 통합의 시대를 여는 것은 새 정부의 역사적 소명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선진국을 향해 비상하는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

문화일보 : “제왕적 대통령제 권력남용 막으려면 인사권 견제장치 필요” (naver.com)

김충남 기자(utopian21@munhwa.com)

김규태 기자(kgt90@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