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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한국 최초 ‘가사전문법관’… 손왕석 법무법인 클라스 변호사

2018-06-05(화)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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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조정은 들어주는 것이 첫째… 성사시키려면 덤비면 안돼”

‘가사전문법관 1호’ 출신으로 서울가정법원 수석부장판사와 대전가정법원장 등을 역임하며 가사·소년사건 분야 최고봉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법조인이 있다. 30년간의 법관 생활을 마치고 최근 변호사로서 ‘인생 2막’을 시작한 손왕석(62·사법연수원 17기) 법무법인 클라스 변호사다. 어릴 적부터 한학(漢學)을 익히며 차분함과 내면의 지혜를 쌓은 그는 ‘한 걸음씩 가면 언젠가는 닿는다’는 따뜻한 카리스마를 가졌다. 가정은 국가와 사회의 근본이지만, 학대와 갈등·빈곤 등의 이유로 ‘가정해체’의 심각성이 날로 커지는 요즘, 가사·소년사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그를 지난 30일 서울 테헤란로 법무법인 클라스 9층 회의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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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학자이시던 할아버지 덕분에 태어나 말을 배우기 전부터 ‘젖 유(乳)’, ‘배 복(腹)’, ‘손 수(手)’ 등 한문을 접하고 배웠습니다. 고모님께서 나중에 ‘너는 아기 때도 젖을 달라고 하지 않고 젖유를 달라고 했다’고 하시기도 했죠(웃음). 초등학교 2학년 무렵 할아버지께서 작고하시어 배움의 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학문을 중시하는 가풍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할아버지께 배운 말씀 중 기억에 남는 공자 말씀이 있는데요. 퇴청해 집에 돌아온 공자께서 댁 마굿간에 불이 난 것을 알고 ‘상인호(傷人乎)?’하시고 불문마(不問馬)하셨다는 것이지요. 마굿간에 불이 났지만, (불이) 사람을 다치게 했느냐고만 묻고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던 거죠. 당시 할아버지께서 이 말의 중요성은 설명하지 않으셨는데, 시간이 지나 떠올려 보니 ‘사람이 우선이다’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가슴에 새긴 말 가운데 중용의 한 구절이 있는데, ‘의금상경 암연일장(衣錦尙絅 闇然日章)’이라는 말입니다. 비단 옷 위에 소박한 겉옷을 입는다는 말로, 군자의 도는 흐릿해 보여도 날이 갈수록 뚜렷하다는 것인데요.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즘 시대와는 동떨어진 말일 수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에게 자랑하거나 내세우지 않고 내면의 도를 키우고자 하는 가치관을 항상 되뇌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학자 집안의 장손으로 

어릴 적부터 한문 접해

어릴 때부터 공부가 아닌 삶의 일부로 늘 한학 서적을 읽고 접한 까닭에 손왕석(62·사법연수원 17기) 법무법인 클라스 변호사는 75년 서울대 철학과에 진학했다. “한문을 공부한다기보다 항상 삶에서 접했기 때문에 동양철학을 제대로 익혀보자는 마음에 철학과에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엄혹한 유신시절이라 공부보다는 학우들과 울분을 토하고 시간을 보내다 정학 처분을 받기도 했죠.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한 후 카이스트(KAIST)에서 행정직원으로 2년 정도 근무했습니다. 하지만 문득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 마침 학교 2년 선배가 사법시험을 준비하자고 권유했습니다. 저보다 2년 먼저 시험에 합격해 검찰에서 일하다 KT 부회장을 지낸 정성복(64·15기) 변호사입니다. 제 인생을 이끌어준 고마운 귀인이시지요. 덕분에 저도 법관으로 법조인의 길에 들어서 사회를 위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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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변호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가사전문법관이다. 이후 대전가정법원장까지 지낸 가사·소년사건 분야의 대가이다. “법관 17년차 무렵, 판사도 전공분야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나왔어요. 판사는 모든 분야를 두루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제너럴리스트이지만, 그 즈음 전문적으로 법관을 양성할 필요성이 대두되며 법원에서는 가사·소년 분야를 전문적으로 발전시키자는 논의가 있었죠. 저도 저만의 전문성을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지원했습니다. 그렇게 가사업무에만 10여년 종사했습니다. 가정의 가치나 개인의 가치를 차분하게 돌아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진 분이라면 어떤 분야보다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곳이 가사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비행청소년의 경우 80%는 사회에 책임이 있습니다. 집을 나와 비행을 저지르는 과정에서 마음을 붙일 부모님이 없어서, 너무 가난해서 내쫓김을 당하는 거예요. 사회가 제 구실을 못하기 때문에 내쫓기는 거죠. 이런 모습을 보면 정의실현이나 엄단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그 아이의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해주고자 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손 변호사는 가사분야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문조사관’ 증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정법원에서는 심리학이나 사회학, 상담학 등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분을 전문조사관으로 채용합니다. 가사·소년재판에서 전문조사관의 조사는 재판의 질을 좌우할 정도로 아주 중요합니다. 예컨대 가정폭력 사건의 경우 ‘몇 대를 때렸느냐’는 질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행위에 이르게 된 정신적 문제나 심리적 상호역학관계 등을 깊이 있게 조사하는 것입니다. 똑같아 보이는 가정폭력 사건도 각 사건마다 해결 방법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전문조사관이 심층분석한 결과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역할은 판사나 일반행정관료가 할 수 없습니다. 가정법원에서는 어찌 보면 전문법관보다 전문조사관의 역할이 더 클 수 있어요. 전문조사관을 충원하고 처우를 개선해 그들의 사기를 올리지 않으면 좋은 조사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숫자가 100여명에 불과해 일손이 무척 부족합니다. 10여년 전부터 200억~300여억원을 들여 적어도 500명을 증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현재의 법원 살림상 추가 부담이 그다지 큰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전문조사관이 증원된다면 가사사건, 가정폭력, 소년비행 사건 재판의 질이 확 달라질 것이고 국민도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게 될 겁니다. 이는 법원에 대한 신뢰와도 연결되는 것이지요. 일본은 전문조사관이 2000여명에 달하는데, 우리나라도 지방의 가정법원에 조사관실이 생기고 법원행정처에 가사소년조사관과가 설치돼야 합니다. 나아가 법원행정처에 조사국도 마련돼야 합니다.”

가사분야 발전위해 ‘전문 조사관’

증원이 가장 중요

‘이혼조정’에도 일가견이 있는 그는 후배 법조인들에게 가사사건에 임할 때의 태도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가사조정은 다른 분야 조정과 달리 ‘들어주는 것’이 첫째입니다. 속에 울분과 한이 쌓인 상태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낸 후에야 제3자의 객관적인 조언이 귀에 들어오기 때문이죠. 법관이나 조정위원이 조정을 빨리 성공시키려고만 하면서 덤비면 실패하기 십상이에요. 꼭 조정시키겠다는 마음을 내려둬야 합니다. 부부 간의 일이라는 것이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겠습니까. 말을 자르지 말고, 시간을 충분히 할애해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하소연을 들어주세요. 조정 석상에서나마 마음을 풀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것이 그분들께 위안이 됩니다. 압력밥솥에서 김을 빼는 일과 비슷하지요. 가정법원 사건은 일반 민·형사사건과 달리 그 사람의 인생 자체가 걸린 문제입니다. 하지만 증거 등이 부족할 수 있기 때문에 혜안을 가지고 인간관계나 심리에 대해 깊이 통찰하며 재판을 담당해야 해요. 특히 부부마다 가정마다 각기 다른 모습이기에 이혼 청구원인도 전부 다를 수 있습니다. ‘척 봐서 답이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가정법원 사건은 인간관계·심리

통찰하며 재판해야

손 변호사는 대전가정법원장 시절 도입한 ‘지리산 행군(로드 스쿨, Road School)’ 프로그램도 더욱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행청소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그들이 몸과 마음을 둘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야 합니다. 비행의 첫걸음은 가출이고, 이는 마음을 둘 집이 없기 때문입니다. 천종호(53·26기) 부산지법 부장판사가 하고 있는 사법형 그룹홈 사업이 바로 1항에 해당하는 사업으로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죠. 두번째 단계는 자기를 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해 정신을 바로잡게 돕는 것입니다. 로드스쿨은 2항을 겨냥한 것입니다. 멘토 선생님과 2인 1조가 돼 10박씩 250여㎞를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도록 걸으며 육체적 고통에 자극을 주는 동시에 선생님과 대화하고 교감하며 자신을 회복하는 것이지요. 자신의 손을 잡아주는 멘토 선생님의 행동 하나하나를 보며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하고 프로그램이 끝났을 때 자존감과 성취감을 느끼며 칭찬을 듣는 것이죠. 법원이 이 같은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전가정법원 역시 성공회 대전교구측과 연계했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열매 등에서 사회봉사자금을 지원 받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법원이 홀로 나서서는 자원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소년법이나 법률을 개정해 국가가 예산을 들여 시스템을 갖추었으면 합니다. 비행청소년 문제 해결의 마지막 단계는 이들이 장기적으로는 살아갈 수단과 방법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직업교육을 제공해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우리사회 전체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가업은 유·무형 자산… 

발전적 승계위한 모델 연구

손 변호사는 그동안 축적한 경험을 살려 가업승계에 가족관계, 인간관계의 문제를 접목시켜 보다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가업승계 모델을 개척해 나갈 예정이다. “클라스가 곧 문을 열 예정인 ‘가족·가업승계연구소’에서 이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건강한 기업승계를 돕고 싶습니다. 단순히 사업체를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가풍이나 인간관계까지 물려주며 유·무형의 자산을 모두 발전적으로 승계할 수 있도록 토탈 솔루션을 제공하고 싶어요. 뿐만 아니라 가사·이혼·상속 관련 재판에서 여성인권이 보다 향상될 수 있도록 돕는 데에도 힘쓰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못다이룬 한학 공부를 통해 고전 국역 번역 사업에도 일조하고 싶습니다(웃음).”

그는 후배 법조인들에게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라는 말을 남겼다. “공자께서는 공부만 많이 하고 생각이 없으면 없는 것이고, 생각만 많고 공부를 안하면 위험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건을 해결하려면 사건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하는데 이때 깊이 생각하고 종래에 있던, 종래에 처리했던 사건과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각 사건마다 내부상황과 경우가 다르고 책임소재가 다를 수 있으니, 겉모습이 비슷하다고 덜컥 같은 결론을 내리면 틀리기 쉽습니다. 사건에 대한 생각과 궁리를 많이 하되 법리에 대한 공부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사건 해결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 없이 판례만 공부한다거나, 고민만 많이 하고 법리나 판례를 뒷받침하지 못해 위험한 일이 되지 않도록 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박수연 기자 sypark@la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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