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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급법 규제의 폐해…’갑질’보다 더한 ‘을질’

2020-04-09(목)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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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은 시대가 낳은 신조어다. 계약 권리상 쌍방을 뜻하는 갑을(甲乙)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갑’의 특정 행동을 깎아내려 일컫는 이른바 ‘~질’이라는 접미사가 붙어 완성됐다.

건설산업에서는 원사업자가 협력사(하도급사)의 공사비를 제 멋대로 삭감하고,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를 전가하면서 ‘갑질’ 문화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국회는 물론 정부부처도 앞다퉈 ‘을’ 입장에서 피해를 입은 협력사에 대한 보호 대책 마련에 나선 상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러한 ‘갑질’에도 변화가 생겼다. ‘갑’이 아닌 ‘을’이 ‘갑질’을 하며 이른바 ‘을질’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협력사가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 위반 사항을 빌미 삼아 원사업자에 추가공사비를 요구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게다가 “공사비를 더 받아낼 수 있다”며 이른바 ‘브로커(퇴직공무원ㆍ퇴직기술자 등)’와 ‘전문변호인’까지 등장한 상태다.

하도급법에 따른 협력사의 피해가 없다는 점도 원사업자를 옥죄는 공정거래위원회 제소 남발로 이어지고 있다. 피해가 없으니 이른바 ‘아니면 말고’ 식 제소가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원사업자 처벌 중심의 ‘하도급법’이 만들어낸 기형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원사업자 입장에서는 수백개에 달하는 건설현장에 대한 공정위의 하도급법 위반 조사를 받는 상황이다 보니 억울한 사안이 있어도 언급 자체를 기피하고 있다.

변화된 원하도급 문화에 대해 정수근 법무법인 클라스 변호사는 “하도급법 출생 자체가 대기업의 불공정한 하도급을 규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며 “시장 현실과 달리 대기업 규제에만 주목하다 보니 발생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협력사가 과연 ‘약자’인가를 봐야 한다. 공정위의 하도급법 위반 여부 조사는 그동안 협력사 입장에서 편향되는 사례가 많다. 오히려 협력사들이 남발해온 요구나 제소가 부당할 때에는 적절한 제재를 가해야 하며, 그래야만 억울한 원사업자를 만들지 않을 수 있고, 공정한 거래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정수근 법무법인 클라스 변호사는 협력사의 ‘을질’에 대한 공정한 평가와 적절한 제재가 필요한 시기라며 이같이 말했다.

일부 협력사의 무리한 추가공사비 요구 등으로 원사업자들이 피해를 입는 상황을 180도 다르게 살펴봐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최근에는 일부 협력사나 퇴직공무원ㆍ기술자 등으로 구성된 브로커들이 공정거래위원회를 마치 ‘떼인 돈 받아주는 곳’이나 ‘울면 과자를 주는 곳’처럼 여기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어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협력사 ‘을질’의 실태가 궁금하다

협력사가 입찰 때 견적을 잘못하거나 공사관리 부실로 적자가 발생했음에도 원사업자에게 이를 보전해달라며 하도급법 위반으로 진정을 제기하는 사례부터 협력사가 원사업자로부터 하도급 대금을 받은 뒤에도 2차 협력사나 자재납품업자, 근로자 등에게 대금을 지급하지 않는 사례도 있다. 협력사가 원사업자로부터 기성금을 받은 뒤 2∼3차 협력사에게 기성금을 지급하기 전에 기업회생을 신청하는 고의부도도 여전하다. 발주자나 지역 국회의원 등과의 친분을 이용해 원사업자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는 사례는 예전부터 끊이지 않았다.

△이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이뤄지나

사실 협력사에 대한 처벌은 찾아보기 어렵다. 현행 하도급법은 원사업자의 불공정행위에만 초점을 맞추고, 이를 규제하다 보니 원사업자 중심의 처벌ㆍ제재가 이뤄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협력사가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실제 협력사가 부당한 민원이나 진정을 제기했을 때마저 이를 대응하기 위한 원사업자의 노력과 시간, 비용은 보상받지 못한다. 하도급법이 시대 변화 그리고 힘의 균형이 달라진 데 따라 개선돼야 하는 이유다.

△원사업자는 샌드위치 신세라는 견해가 있다

원사업자는 발주자에 대한 지체상금이라는 부담을 안고 있다. 이로 인해 설계변경이 필요한 경우에도 공사비 증액 없이 우선 공사를 진행한다. 자칫 발주자가 설계변경 승인을 거부하거나 승인을 하더라도 추가 공사비는 100% 확보하는 게 어렵다. 그럼에도 협력사에는 하도급 대금을 100% 지급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발주자가 추가공사를 구두로 지시했을 때에도 문제다. 공사는 협력사와 진행했는데, 발주자가 협조를 안해주면서 도급변경계약 체결 지연이나 추가 공사비 미지급이 발생하면 원사업자는 협력사에게 자비를 투입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를 거부하면 하도급법 위반 벌점을 받게 된다.

△원사업자와 협력사가 윈원할 수 있는 방안은 없나

원사업자의 하도급법 위반 여부를 다투는 상당수 원인은 하도급대금 또는 정산금액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해법을 만들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도식적으로 하도급법 위반 여부를 가려 원사업자에게 징계를 내리는 게 아니라 법원에서 감정과 같은 유사한 절차를 거쳐 적정한 하도급대금의 범위를 제시하면 분쟁은 해결될 수 있다. 원사업자는 강자, 협력사는 약자라는 틀을 깨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또 다른 개선 방안이 있다면

원사업자와 협력사가 정산합의서를 체결하는 진정성을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일부 악의적인 협력사는 정산합의서 체결 이후 원사업자의 압박과 부당특약 조항이 있다며 무효화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공정위에 민원을 넣고 원사업자를 처벌해달라고 한다. 마치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느낌이다. 가능하다면 공정거래위원회나 하도급분쟁조정협의회가 정산협의서 체결 때 그 진정성을 확인하는 심문절차 등 제도를 만들면 갑을 관계가 아닌 서로 상생하는 균형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한형용기자 je8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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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근 변호사는 법무법인 아태, 법무법인 센트럴, 법무법인 로담에서 건설 및 하도급거래 관련 분쟁 분야를 전담해왔다. 서울특별시 행정심판위원회 위원을 거쳐 현재는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감사원 행정심판위원회 위원, 서울특별시 의회 입법법률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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