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 “민주주의·법치주의 바로 알고 토론문화 정착해 나갔으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법전(法典) 보다는 영화 ‘변호인’에서 배우 송강호의 극중 대사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더 잘 알려진 헌법 조문이다. 여기에는 대한민국 근본이념이 ‘민주주의’이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기본 원리로서의 ‘국민주권주의’ 등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 원리 및 이념이 담겨 있다.

이는 ‘국정농단’ 사태 때 국민들이 촛불을 들면서 지켜내고자 했던 가치이기도 하다.

제헌절(17일)을 앞두고 헌법 가치와 질서를 수호하는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수장을 역임한 이강국(75·사진) 전 헌법재판소장을 만나 헌법의 가치와 의미 등을 들어봤다. 이달 4일 서울 강남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최근 헌법소원 건수가 늘고, 내용도 다양화되는 등 헌법재판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억울함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한결같이 헌법소원을 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 헌재가 처음 생길 때는 헌법소원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헌재의 재판권이 확대되고 국민들의 실생활을 좌우하게 되면서 헌법재판과 헌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즈음해서는 ‘헌재가 대통령, 살아있는 권력조차 끌어내릴 수 있는 힘이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헌재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고 더욱 높아졌습니다.”

-그런면에서 향후 헌재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이는데요.

“헌재의 재판권은 정치적 자유, 정치적인 권리뿐 아니라 국민의 경제·사회적 기본권 보호를 위해 계속 확대될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국민들의 실생활에 더욱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헌법 보장 방법 유형에 따라 우리처럼 헌재가 설치된 독일·프랑스·오스트리아 등 유럽 국가와 미국·영국·일본 등 대법원이 헌재 역할을 하는 국가로 양분된다.)

-최근 들어 헌재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 높아졌습니다.

“중앙일보와 동아시아연구원이 지난 2005년부터 격년제로 국가기관 신뢰도를 조사하는데, 헌재는 10년 이상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국가기관으로 선정됐습니다. 국민들의 믿음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죠.

그 배경은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려는 헌법에 대한 헌재의 충성스러운 정신이 쌓여서 나온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실제 헌재는 1988년 창립 이후 30여 년 동안 국민의 자유와 인권, 기본권 보호를 위해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헌재의 결정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그에 따른 부담도 컸을 텐데요.

“헌법은 우리나라 최고의 법입니다. 그 최고의 법을 다루는데 있어 해석과 적용은 정확해야 합니다. 헌법은 민법과 상법 등 하위 법에 영향을 미치기에 해석은 정확해야 하고, 적용은 빈틈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의 헌법 해석은 비교적 그 목표에 가깝게 접근했다고들 합니다.”

-헌법 조문이 추상적이어서 해석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헌법은 따지고 보면 국민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법질서입니다. 국민의 행복이 가장 큰 목표이고, 국민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도 필요하고, 법치주의도 필요하고, 재산권 보장·신체의 자유 등이 다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헌법은 충돌되는 가치와 이념을 다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언론자유만 보더라도 ‘언론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고 하면서도 ‘국민의 사생활은 보호돼야 하며, 명예훼손도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의 법익이 충돌하는 경계선이 어디인지, 그리고 구체적인 사안에서 어느 쪽에 더 많은 가치와 무게를 둬야 하는 지는 쉽지 않은 문제이요. 법익이 충돌하거나 상충되는 경우 어떤 절충점을 선택하고, 그 절충점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가 가장 어려운 문제입니다.”

-헌법 해석에 있어 당시의 시대정신도 반영됩니까.

“물론입니다. 저의 재임기간(6년) 중에 간통죄를 위헌이라고 해서 폐지했는데, 이전까지는 혼인빙자 간음은 당연 처벌됐습니다. 국민의 성적 자기결정권, 사생활 보호 등에 대한 욕구가 커지는 과정에서 과연 법률이 이불 속 문제까지 들춰보고 ‘이게 죄가 되나, 안되나’를 따지는 게 시대정신에 맞는 것이냐는 등에 대한 고민을 합니다.”

-재판관들은 시대흐름을 따라잡기 쉽지 않아 보이는데.

“그렇기 때문에 법관들은 끊임없이 자기 수련을 해야 합니다. 틈틈이 영화도 보는 등 수시로 접촉해야 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독서입니다. 그 다음에 신문, 특히 종이신문을 읽는 것이죠. 그 중에서도 신문 사설을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사안에 대한 가치나 체계를 잡을 수 있죠. 이를 통해 사색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헌재에서 결정을 내릴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시 하셨습니까.

“국민과 역사에 의해서 어떻게 평가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항상 그 부분을 반문했죠. 후세의 역사가나 헌법학자, 그리고 국민들로부터 ‘잘못된 판결을 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까, 너무 시대에 앞선 판결로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판결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까’ 등등. 그래서 최종 결정을 앞두고는 몇 번씩 다시 검토하고 검토합니다.”

-재임기간 동안 헌재의 기틀을 다지는데 큰 역할을 하셨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원 다닐 때부터 헌법을 전공했습니다. 당시 주위에서는 ‘돈벌이도 되지 않는 헌법을 전공하느냐’고 말렸는데, 헌법의 자유민주주의, 기본권 보장 등 거대 담론이 좋았습니다. 대학원을 마치고 독일에 가서도 헌법을 연구했고, 그 때 연구한 자료를 모아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헌법 전문가라고 해도 될 정도였습니다.

제가 4대 소장인데, 전임 소장 가운데는 헌법을 전공하신 분은 없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재임기간 그에 상응하는 실적도 냈다고 생각합니다.”

-‘상응하는 실적’이란 무엇입니까.

“헌법 수호라는 제1의 책무를 가장 잘 수행한 것이죠. 헌법을 헌법답게, 최고의 법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조금은 자랑할 만하다.”

(헌재 소장 퇴임 무렵 ‘대한민국 헌재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소장’이라는 평가를 담은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다. 그는 ‘그런 논문을 접할 때마다 뿌듯하다’고 했다.)

-헌재 소장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역할은 큽니다. 재판관 9명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재판부 심리 때는 쟁점사안에 대한 법리적 공방이 치열합니다. 자칫 한 쪽에 몰입되면 논의가 엉뚱한 길로 가기도 합니다. 잘못하면 뜬구름 잡기식 판결이 나올 수도 있는데, 그럴 때 사건이 가장 잘 해결되는 합리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헌재 소장은 그럴 정도로 사건을 조망할 수 있는 식견과 학식이 있어야 합니다.”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까지 이야기 많았는데, 각론에서 의견이 갈리다 보니까 더 이상 진전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입법 의원들은 개헌 보다 선거제 문제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실제 국회 공청회 때 보면 개헌 공청회는 별 관심이 없고, 옆방의 선거제도 공청회에 몰려 난상토론이 벌어지곤 합니다.”

-현재의 ‘개헌’ 논의를 어떻게 보십니까.

“미국의 경우, 200년 전에 만들어진 헌법으로 지금도 구체적인 사건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헌법의 정확한 해석과 적용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죠.

우리가 헌법을 해석하고 적용함에 있어 시대정신에 맞고, 역사적으로도 높이 평가될 수 있는 그런 방향으로 운영한다면 꼭 헌법을 바꿔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헌법을 개정하자고 하는 이유는 권력구조 때문인데, 권력구조도 따지고 보면 어느 방식이 좋은 지는 검증된 바가 없습니다. 이 또한 정답은 없습니다.”

-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이제는 국민들도 민주와 법치에 대한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한 단계 더 높은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인식을 확실하게 각인해야 합니다. 필요할 때만 자유민주주의이고, 법치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많이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더불어 토론문화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로 논쟁하는 방법, 경청하는 방법 등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합리적이고 정확한 결론을 도출해 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토론문화가 정착이 돼 있지 않다 보니, 말 몇 마디 주고받다 보면 멱살잡이가 나오곤 합니다.

이는 우리나라가 상하관계, 즉 수직적 관계는 확립돼 있는 반면 수평적 관계에 대해서는 경험을 하지 못하고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 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은

1945년 임실에 태어나 북중-전주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같은 대학 사법대학원과 독일 괴팅겐게오르크아우구스트대에서 헌법학 석사를, 고려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졸업 해인 1967년 제8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그는 1972년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된 후 서울민사지법 판사, 대전지법 법원장 등 법원의 요직을 거쳐 2000년 대법관에 임명됐다.

법원행정처장(2001년)을 거쳐 2007년 제4대 헌법재판소장에 임명된 그는 임기 6년의 헌재 소장을 마친 2013년 1월부터 사회기여 차원에서 법률구조공단에서 무료 법률 상담활동을 벌였다.

이후 서울대 로스쿨에서 2년간 석좌교수를 역임한 후 올 1월부터는 서울 강남의 법무법인 클라스 상임고문 및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더불어 올 6월에는 수차례 고사했던 전주고·북중총동창회장직을 수락하고 동창회장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했다.

지난달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치른 그는 “새로운 100년의 역사를 위해 첫 출발을 잘해야 된다는 의무감이 앞선다”며 “앞으로 전주고 르네상스 시대를 열겠다”며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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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전북일보(http://www.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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