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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보험’ 회사들이 병원 상대로 줄줄이 소송하는 이유

2021-12-27(월)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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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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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hpark@classhklaw.com

[김기훈의 Idea & Strategy] 박영화 법무법인(유한) 클라스 대표변호사 ①/②

의료법률 시장은 법조계에서 새로운 개척 대상이다. 의료 시스템을 합리적으로 개선해 국민들의 의료비 지출은 줄이고 서비스 질은 더 높이는 것이 의료법률 전문가들의 목표이다. 사진은 한 병원의 수술 장면./조선일보DB

지난해 1월 코로나 사태가 발생한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K방역(한국의 방역 시스템)을 매우 성공적인 사례로 국내외에 홍보해왔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가 다른 나라보다 매우 적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의 상황은 심상치 않다. 준비 안된 ‘위드 코로나’ 시행으로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급증하면서 K방역이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정부의 정책은 성공하면 문제가 없지만 실패를 해 많은 피해자가 생기면 피해자들의 소송 등 후유증을 낳는다. K방역은 어떤 후폭풍을 불러올 수 있을까? 정부는 후유증을 줄이기 위해 정책을 어떻게 좀 더 섬세하게 써야 할까? 전례 없는 사건인 만큼 후유증 처리에 대해서도 국민들이 미리미리 생각해 보면서 지혜를 모으고 합의점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의료법 분야의 전문가인 변호사를 만나 보기로 했다.

박영화 변호사는 법무법인(유한) 클라스의 헬스케어팀을 이끌고 있다.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 시절에 의료사건을 전담한 적이 있는 그는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이후 의료 시장이 급속히 커지고 있는 점에 주목해 의료법 분야로 전공을 택했다. 병원, 제약회사, 의료기기회사, 의료인, 환자가 그의 주요 고객이다. 지난 12월 16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44길 8 아이콘빌딩 10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지하철 2호선 선릉역 근처에 위치한 법무법인 입구에 도착하자 그가 수많은 변호사실 사이의 미로를 가로지르며 필자를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박 변호사는 “다른 분야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는 법 논리가 의료계에서는 아직 적용되지 않고 있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이러한 문제점들을 하나씩 고쳐가면서 영역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 “코로나 사태 와중에 정부가 시행한 K방역 조치의 법적인 근거가 부족해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소송 등 후폭풍이 걱정된다”며 “전대미문의 사태인 만큼 국민들이 지혜를 모으고 국회가 선도적으로 법을 바꿔 가면서 부족한 점을 서둘러 보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판사 16년, 변호사 19년

—법조인 생활을 한 지 얼마나 됐나?

“판사 생활을 16년 했고, 이후 19년째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법무법인 내에 헬스케어팀, 산업안전보건팀, 디지털포렌식팀 등 특화된 팀들이 있는데, 이 가운데 헬스케어팀을 이끌고 있다. 물론 의료분쟁 뿐 아니라 변호사들이 하는 기본 업무인 민사, 형사, 가사, 특허, 조세, 행정 같은 일반 사건에 대한 소송 및 자문 업무도 한다.”

—의료법률 업무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2018년 법무법인 충정에 있을 때 의료 혹은 건강보험 전문가들을 영입해 헬스케어팀을 처음 만들었다. 당시 의료법률 시장이 크지 않다며 내부 반대가 있었지만 내가 직접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발표까지 해가며 설득했다. 지난해 변호사 20명과 함께 법무법인 클라스로 옮겨서 재판 실무경험이 많은 변호사들과 함께 헬스케어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의료·복지 수요가 늘면서 관련 소송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사진은 지난 12월 23일 판결 선고 직전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모습./대법원

법무법인의 헬스케어팀이라는 조직이 독자들에게 매우 생소할 것 같아서 좀 더 깊이 들어가 보기로 했다.

—헬스케어팀에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나?

“나를 비롯해 서울고등법원 의료전담 재판장 출신 변호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법률지원단장 출신 변호사, 의료기관의 설립 및 인수합병(M&A) 전문가 등 여러 명이 팀을 이루어 병·의원, 제약사, 의료기기 회사의 업무를 법률적으로 도와주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 또한 보건복지부차관, 식품의약품안전처장, 국민건강보험공단 본부장,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실장, 제약회사 대표이사 등 관련 분야의 실무경험이 많은 고문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업무에 따라 법무법인 내 의료·행정 소송의 경험이 많은 변호사들이 힘을 보태고, 때로는 외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국내 로펌(법무법인) 중에서 헬스케어 전담팀을 두고 있는 곳이 많은가?

“김앤장, 광장, 율촌, 클라스 정도이다. 다른 곳은 일반 사건을 담당하는 변호사가 의료 사건도 겸해서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종합병원 이사장의 억울한 사연

—헬스케어는 법률 시장에서 새로운 분야인데, 시작하게 된 계기는?

“2000년 인천지방법원에서 민사합의부 재판장으로 근무할 당시 의료분쟁 전담 재판부를 맡았다. 당시에 재판을 하면서 의료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변호사 생활을 하던 중 한 의뢰인이 찾아왔다. 사연은 이랬다.”

박 변호사는 잠시 숨을 돌리더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2000년 7월 1일 의약분업이 시행된 후 의사가 운영하는 병원은 약국을 운영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지방의 한 종합병원이 병원 앞에 약국을 따로 내고 그동안 병원 내 약국에서 근무했던 약사 명의로 이 약국을 운영했다. 의사가 처방전을 발급하면 약사가 이 처방전에 따라 약을 조제해 환자에게 제공했다. 환자가 진찰을 받고 약을 타서 복용하는 과정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단지 약사가 아닌 의사가 주도하여 약국을 개설하고 그 수익을 가져갔다는 이유로 병원 이사장이 형사처벌을 받았다. 그리고 약국이 그간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약품대금과 조제료 명목으로 지급받은 200여 억원을 부당이득으로 간주해 환수한다는 처분을 받았다. 그런데 이 200여 억원 중에는 약국이 약을 조제하기 위해 제약회사로부터 구입한 약품대금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 약품대금까지 반환하게 되면 약국은 자기 돈으로 구입한 약품을 환자들에게 무상으로 공급한 셈이 된다. 반면 건보공단은 환자들을 위하여 어차피 지출했을 약품대금을 되돌려받는 불합리한 결과가 된다. 이걸 보면서 의약 분야에 법률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병원들은 환자의 진료와 치료 후 지원 받는 금액을 놓고 건강보험공단과 소송을 벌이기도 한다. 사진은 서울대학교 병원 건물./뉴시스

—건강보험공단이 돈을 회수할 때 당연히 조제에 들어간 약의 원가는 빼고 이익을 취한 부분만 부당이득으로 간주해 회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맞는 말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다른 분야와 달리, 의료계에는 아직 법률 논리로 볼 때 불합리한 부분이 적지 않다. 의료인들도 법률 논리를 몰라서 불합리한 제도나 행정처분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그냥 수긍하는 경우도 많다. 그 후 대법원이 위와 유사한 사건에서 실질적인 부당이득 규모를 가려서 환수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이를 수정하는 길이 열렸다. 만약 병원에서 10여년 간의 약값까지 모두 반환해야 한다면 병원은 억울하게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 의료기관들이 이러한 부당한 처분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을 보고 법률적으로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에 의료 혹은 건강보험 분야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을 영입해 헬스케어팀을 만들게 됐다.”

해마다 성장하는 의료법률 시장

—시작한 뜻이 좋더라도 관련 시장이 계속 커져야 변호사 업무를 유지하거나 성장할 수 있다. 의료법률 시장의 규모는?

“법률 시장의 변화는 사회의 변화를 따라간다. 의료법률 시장의 규모를 정확하게 추산하기는 어렵지만, 복지예산의 증가 추이를 보면 의료법률 시장의 증가 추세를 대략 가늠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평균 수명이 증가하고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복지예산과 의료비 지출도 늘고 있다. 복지예산은 2019년 148조9000억원에서 2020년 167조원, 2021년 185조원으로 늘었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건강보험공단의 재정지출(국민건강보험 재정 규모)도 매년 증가하면서 그 분야 법률 수요도 점점 늘어날 전망이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헬스케어 지출이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의료법률 시장도 점점 커지는 추세이다. 사진은 운동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한 노인들이 운동처방사의 구령에 맞춰 다리 올리기를 하고 있는 모습./조선일보DB

—새로운 법률 시장을 개척한다면 의료 분야보다 IT(정보기술) 분야가 더 클 수도 있지 않은가?

“정부가 신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는 분야가 IT와 바이오이다. IT쪽을 먼저 생각해봤으나 분야가 너무 넓고 기술도 변화가 빨라서 장기적으로 볼 때 시장을 따라가기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반면 바이오를 포함하여 헬스케어 분야는 병원 같은 기존의 의료시스템이 정착되어 있기 때문에 도전할 목표가 좀 더 구체적이고 명확하다고 생각했다.”

—법률과 마찬가지로 의학도 매우 전문적인 분야이다. 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의료분쟁을 다루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당연히 어려움이 있다. 의료소송 분야에서 원고는 주로 환자이고, 피고는 주로 의사이다. 의학적으로는 의사들이 정교하게 방어를 잘 한다. 변호사들은 의학 지식에서는 의사들에 못미치지만 자문 의사들의 도움을 받아 업무를 수행한다. 예전에 인천지방법원 의료사건 전담부에서 재판을 할 때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전공의 과정까지 마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판사와 함께 일했다. 덕분에 사건을 처리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지금은 그래도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 로스쿨 제도가 생기면서 의사 출신 변호사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의료 사건은 관련 재판 경험이 많은 법률가들이 내부 및 외부 전문가들과 협업으로 업무를 수행한다.”

초음파 검사한 간호사, 의료법 위반?

헬스케어팀 변호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사례를 물어보기로 했다.

—박 변호사가 맡은 의료 사건 가운데 주요 사건을 든다면?

“작년에 일부 대학병원들이 심장초음파 검사를 의사가 직접하지 않고 간호사들이 했다는 이유로 경찰이 병원들을 압수수색하고 의사와 간호사들을 의료법 위반으로 조사했다. 당시 우리 팀이 1년 넘게 변호한 끝에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 문제는 간호사의 검사행위에 대해 의사가 어느 정도까지 지도·감독을 하면 의사의 진료행위로 볼 수 있는지 그 판단이 핵심이었다. 검찰은 의사의 지도·감독 하에 간호사가 검사를 했다고 판단했다. 미국은 전문간호사(PA간호사)라는 제도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그런 제도가 시행되지 않고 있다.”

간호사가 직접 초음파 검사를 할 경우 의사의 감독을 제대로 받았는지 여부가 의료 소송의 쟁점이 되기도 한다. 사진은 의사가 갑상선 초음파 검사를 하는 모습./조선일보DB

—다른 사례를 하나 더 든다면?

“한 제약회사가 치료용 주사제를 개발했다. 이 회사의 위임을 받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평가절차를 거쳐 의료기기로 등재하는 업무를 지원했다. 새로운 의료기기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할 대상이 되는지, 대상이 된다면 그 가격은 얼마가 적정한지, 공단과 환자 본인의 부담비율은 어떻게 정할지 등을 평가하는 절차이다. 우리가 그 과정에서 필요한 자료 제출 등 업무를 지원해줬다.”

—제약회사에서 직접 하면 되지 않나?

“제약회사에서 제품을 하나씩 낼 때마다 그러한 절차를 모두 수행해야 하는데, 중소 제약사들은 그러한 전문 인력들을 둘 여유가 많지 않다. 그래서 심사평가원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우리 팀원들이 그러한 절차를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자료를 제출하고, 부족하면 보강해 다시 제출하고, 의료수가 협상도 대신 해준다.”

불합리한 의료 제도들

—의료 현장에 있으면서 여러가지 불합리한 제도나 관행을 많이 목격했다고 했다. 사례를 들면?

“코로나 사태 이후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원격의료 사례를 들어 보자. 우리나라에서 이미 원격의료가 일부 허용되고 있기는 하다. 대표적인 예가 영상의학부문이다. 영상의학 분야는 병원의 방사선 기사가 찍은 의료영상을 영상의학과 의사가 판독하는 것이 주요 업무이다.

그런데 중소 병원의 경우 영상의학과 전문의를 반드시 전속(상근)으로 두어야 할만큼 판독 업무가 많지 않은 곳이 있다. 그래서 영상의학 전문의는 비전속인 경우 5개 병원까지, 전속인 경우 추가로 1개 병원과 계약을 맺고 인터넷으로 의료영상을 전송 받아 판독한 뒤 소견서를 병원에 보내주는 방법으로 업무를 할 수 있다. 병원에서 그 소견서에 따라 수술을 하거나 처치를 하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영상의학과 전문의는 영상판독 업무 외에 ‘의료영상 품질관리업무의 총괄 및 감독’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한 병원의 비전속으로 등록된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병원에 출근하지 않은 채 원격으로 CT영상을 판독하였을 뿐 의료영상 품질관리 업무의 총괄 및 감독업무 등을 수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건강보험공단이 관련 요양급여 5억원을 환수하는 처분을 하고, 복지부는 병원에 대해 업무정지 대신 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러자 병원측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건강보험공단과 복지부는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해당 병원에 출근을 안했으니 영상의학과 업무에 대한 총괄·감독을 안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병원은 비전속 의사이므로 출근을 안해도 영상판독과 추상적인 총괄·감독을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대법원에서 병원이 승소했다. 원격의료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의료법 규정이 있지만, 현장에서 어느 정도까지 허용되는지에 대한 해석 차이로 발생한 사건이었다.”

CT나 X선 촬영과 같은 영상의학 부문은 원격진료를 일부 허용하고 있지만 허용 범위에 대해서는 정부와 병원이 이견을 보이기도 한다. 사진은 환자가 수술 전에 CT촬영하는 모습./조선일보DB

—다른 사례를 들면?

“한 병원에서 의료기사가 찜질기를 환자 몸에 대줬다. 보건복지부는 이를 무면허 의료행위라고 보고 업무정지 대신 관련 급여(부당이득)의 5배에 이르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과징금을 산정할 때 전체 매출에서 부당이득이 차지한 비율을 따져서 그 비율에 따라 최고 5배까지 과징금을 부과한다.

그런데 관련 법령에 규정된 매출 대비 부당이득의 비율을 일률적으로 적용해 과징금을 부과하다 보니 위반행위의 중대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해 관련 급여의 5배 금액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비전속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단순히 영상의학과 업무에 대한 총괄·감독을 제대로 안했다고 판단하여 무면허 의료행위와 같은 비율인 5배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

—다른 법률에는 어떻게 되어 있나?

“일반 형사법에는 고의범이냐 과실범이냐, 비난 가능성이 높은가 낮은가와 같은 위법성의 정도에 따라 형벌의 무게가 달라진다. 위법행위를 한 의료기관에 대한 업무정지나 과징금은 형벌과 같은 성격인 행정형벌인데, 위법성의 정도를 고려하지 않고 매출 대비 위법한 수익의 비율만 계산하여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은 법리상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런 후진적인 규정은 치밀하고도 합리적으로 관련 규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건강보험공단이 깐깐한 이유

—건강보험공단의 입장은?

“건강보험 재정상태가 악화되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려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런 공단의 입장이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다른 분야에서 보편화된 법의 원칙이나 이념들이 의료계 내지 건강보험 분야에서 적용되지 않으면 병·의원 등 의료산업이 제대로 발전할 수 없다고 본다.”

—의료계에 이런 후진적인 규정들이 많다면 의료인들은 왜 이를 받아들이나?

“의료인들이 참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전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의 공적보험제도가 의료인들의 희생을 밑거름으로 정착되었다는 점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현재 시점에서 의료인들에게 과거와 같은 희생을 계속 요구하기보다는 이들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에 합당한 보상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 지점에 의료인들을 위한 법률가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건강보험공단은 병원에 보험급여(치료비)를 지원하기도 하지만, 국민들이 납부한 건강보험료를 아끼기 위해 병원들의 지나친 치료 비용은 회수하기도 한다. 지난 10월 9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국민건강보험 민원실에서 시민들이 업무 처리를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장련성 기자

—개인 환자들의 소송 의뢰도 많나?

“최근에 어떤 지인이 찾아왔다. 서울 시내 대형 병원에서 위내시경 건강검진을 받다가 위에 구멍이 뚫려 1년 넘게 치료를 받았다며 병원측을 상대로 소송을 의뢰해왔다. 다만 요즘에는 개인들이 의료사고로 소송을 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는 않다. 2012년에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생겨서 병원과 환자 간 의료분쟁에 대해 1차 조정을 해주는 측면이 있고, 의료기관 스스로 사고 발생 방지를 위해 노력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전체 업무 중에서 개인 고객이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가 처리하는 업무는 크게 보면 6가지 분야이다.

①병원과 의원 등 의료기관의 업무정지 또는 과징금 부과처분, 부당이득환수처분에 대한 법률적 대응 ②의사 등 의료 분야 종사자의 면허정지, 면허취소, 의료영업정지에 대한 구제절차 ③의사들의 리베이트와 형사처벌 문제 ④제약회사의 신약 등재와 약가 산정 ⑤의료기기회사의 의료기기 등재와 수가 산정 ⑥개인 환자의 의료사고 소송이다.

이 가운데 개인 고객은 약 10% 정도이고, 나머지의 절반은 병·의원과 의사, 다른 절반은 제약회사와 의료기기 회사의 사건이다.”

의료분쟁의 새 트렌드

—최근 의료분쟁에서 새로운 흐름이 있다면?

“예전에는 의료사고와 관련해 환자와 의사 간의 분쟁이 주류였다. 그러나 이제 전국민 공공보험 시대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최근에는 건강보험급여와 관련한 분쟁, 신의료기술의 안전성 내지 유효성에 대한 분쟁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사례를 하나 든다면?

“보험회사들이 환자의 치료비 지출액을 보상해주는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과 관련해 병원과 의원에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하는 소송이 많이 늘고 있다. 병원과 의원들이 새로운 의료기술을 적용해 환자들을 치료한 뒤 그 치료비를 실손보험금으로 청구해 받고 있는데, 보험회사들이 일단 보험금을 지급한 뒤 나중에 새로운 의료기술이 맞는지 효과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의사들이 과다청구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험사들이 새로운 치료법에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새로운 의료기술을 현장에서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대형 보험회사 한 곳이 병원을 상대로 부당이득을 반환하라고 소송을 하면 다른 보험사들도 뒤따라 소송에 나서는 경향이 있다.”

실손보험 회사들은 최근 병원이 지나친 의료행위를 하면서 보험사에 치료 비용을 과다청구하고 있다며 줄줄이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사진은 BNK경남은행이 ‘실손보험 빠른청구 서비스’를 시행한다는 안내광고./BNK경남은행

—이와 관련해 직접 맡은 사건이 있나?

“서울 강남의 한 병원이 무통증 신호요법이라는 치료를 했다. 전기자극을 줘서 통증을 감소시키는 기술이다. 보건복지부 규정에 따르면 ‘다른 통증 치료로 관리가 되지 않는 만성 통증, 암성 통증 및 난치성 통증 환자에게는 무통증 신호요법을 건강보험공단의 지원이 되지 않는 법정 비급여 항목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일단 보험회사가 실손보험금으로 치료비를 지급했다. 그런데 보험회사는 신의료기술이라면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을 인정 받아야 하는데, 이 절차를 거치지 않고 처치를 했다는 이유로 병원에 지급한 실손보험금을 반환하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또 백내장 수술을 한 뒤에 눈 질환이 생겨 다시 수술하는 후발백내장수술의 경우에도 한 환자가 여러 차례 후속 수술을 하고 실손보험을 청구하니 ‘의사가 안해도 되는 수술을 했다’며 보험회사가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을 내기도 했다. 이런 소송은 대학병원보다는 중급 병원에서 많이 발생한다.”

수술실 카메라 설치, 그 후

지난 8월에 국회에서는 수술실 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이 통과됐다. 이 법 덕택에 의료법 전문 변호사들이 새로운 소송호황을 누릴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도 있다. 국민들의 향후 의료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 올 이 조치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후속 조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2014년부터 환자단체 중심으로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 입법화를 요구하다가, 2016년 안면윤곽수술 중 과다출혈로 사망한 사례가 생기면서 입법 논의가 본격화됐다. 지난 8월에 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2023년 9월 25일에 시행될 예정이다. 현재 정부가 법을 시행하는데 필요한 하위 규정들을 만들고 있다. 카메라 몇 개를, 어떤 각도에서 설치해야 하는지 같은 세부적인 내용이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

수술실 CCTV(폐쇄회로 텔레비전) 설치가 2023년 9월부터 의무화되면서 카메라의 숫자와 각도 등 구체적인 설치 사항이 의료계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사진은 자발적으로 CCTV를 설치한 인천시 부평구 관절 전문병원인 부평힘찬병원./연합뉴스

—법에 규정된 내용은?

“전신마취 수술실에는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환자의 요청이 있을 때만 촬영한다. 또 의사의 동의가 있으면 음성녹음도 가능하다. 다만 응급수술이나 고위험 수술의 경우 의사가 촬영을 거부할 수 있다. 카메라를 다른 네트워크에 연결하는 것을 금지하고, 촬영 기록은 30일간 보관된다. 열람은 쌍방 동의가 있거나 수사나 재판에 필요할 때 가능하다.”

카메라 대수와 각도 등이 중요

—의료 분야 업무를 하는 변호사로서 이 법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카메라 설치에 찬성하는 환자 측은 무자격자 대리수술과 의료사고 은폐, 성범죄 같은 불법행위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의료계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가 붕괴되고 의사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돼 최선의 진료를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는 지금 길거리를 다녀 보면 온 사방에 CCTV가 설치되어 범인 검거나 교통사고의 과실 유무를 밝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추세에 비추어 볼 때 환자가 전신마취를 하고 가족들도 보지 않는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대세라고 본다. 환자의 요청이 있을 때만 촬영하기 때문에 큰 틀에서는 문제가 없는 듯 하다.”

—의료계는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

“카메라 설치는 의사들의 무고를 밝히기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카메라 설치 대수나 각도 같은 세부적인 절차를 잘 만들면 의사와 환자들간의 의견 차이가 많이 줄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컨대 산부인과에서 출산을 할 때 카메라의 방향과 각도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의사 뿐만 아니라 환자의 프라이버시(사생활)와도 직결된 것이다.”

산부인과 분만실에 설치하는 CCTV(폐쇄회로 텔레비전)의 각도 문제는 의사의 책임 규명 뿐 아니라 환자의 프라이버시(사생활) 보호와도 직결된 문제라고 의료법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사진은 한 산모가 출산 직후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조선일보DB

박 변호사는 여기서 사례를 한 가지 들고 싶다고 했다.

“법원에 근무할 때 산부인과에서 출산을 하다가 산모가 사망한 사건을 담당한 적이 있다. 환자 가족들은 의료사고라며 1주일간 병원을 점거하기도 했고, 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어느 정도 쌍방의 주장과 자료제출이 이뤄진 다음 쌍방을 판사실로 오게 해 적극적으로 의사의 과실 유무를 구두로 따지며 세심하게 심리를 진행했다. 의사는 진료자료를 모두 제출하고 성실히 심리에 임했다.

결국 의사의 과실이 있다고 볼 수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의료행위에는 어느 정도 위험성이 따르고 딱히 의사가 잘못했다고 볼 자료가 없으니, 이쯤에서 분쟁을 끝내고 화해를 할 것을 권유해 쌍방이 이를 받아들였다. 의사의 적극적인 진료 관련 자료준비는 자신을 보호하는 방패가 될 수도 있다. 수술실 CCTV가 의사를 보호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의료계 5대 과제

—외국과 비교해 볼 때 한국의 의료법률 시장 현황은?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의료계와 마찬가지로 법조계도 전문 분야가 점차 세분화되어 가고 있다. 국내 의료계만 보더라도 예컨대 내과가 심장내과 신장내과 순환기내과 호흡기내과 식으로 다양하게 분류되어 세분화되어 가고 있지만, 법조계는 아직 이러한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의료법률 시장도 의료계의 변화 추이를 따라 진화해야 국민에 대한 의료법률 서비스가 향상될 수 있다.”

한국 의료정책의 실무 책임자인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 지난 12월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장학재단 서울사무소에서 열린 국립병원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법률 전문가 입장에서 볼 때 한국 의료업계의 과제를 정리한다면?

“크게 다섯가지를 들 수 있다.

①정부는 건강보험급여의 지출이 계속 늘어나고 있으므로 병원에 지급하는 진료수가를 줄이려고 한다. 반면, 의료기관들은 원가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적정화를 요구한다. 인재 양성과 신의료기술에 투자할 재정 여력이 없고, 진료수가가 낮은 수술보다는 종합검진이나 비급여 치료로 돈을 벌어서 손실을 메우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②의료인력 수급의 불균형 문제가 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월급이 적더라도 서울 등 수도권에서 근무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지방의 병원들이 의사나 간호사를 공급 받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부분의 보건소에 의사 인력이 부족해 공중보건의가 근무하고 있다.

③환자가 상급종합병원으로 쏠리는 현상이 심하다. 지방은 환자가 없어서 병원 운영을 못하지만, 서울의 대형 병원은 하루에 1만명이 넘는 환자가 몰리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④의사, 한의사, 간호사 등 의료업계 종사자들간의 업무 분장을 둘러싼 갈등 구조를 해소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간호사가 의사의 감독 하에 일정 부분에서는 진료도 담당하는 전문간호사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간호사가 의료기기를 움직여가며 촬영도 할 수 있다. 의료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니 이런 제도를 우리 나라도 도입할 지 고민해야 한다.”

⑤우수 의료인력들을 해외로 진출시키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의료 수준은 이제 미국 유학을 가서 배워와야 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지금 과제는 이렇게 우수한 의료인력들이 해외 환자를 유치하거나 해외로 진출하는 단계로 나가야 한다. 예를 들어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서는 간호사들에게 아랍어를 가르쳐 아랍 부자 환자들을 유치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제도를 발전시켜야 한다.”

—이런 문제를 누가 해결할 수 있나?

“의료법률이나 정책 같은 제도 개선 사항이니 결국 보건복지부가 의료계와 협의하여 풀어야 한다. 의료업계 종사자들의 이해가 대립되고 법률 전문가가 부족해 이러한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과거에는 의사들이 진료만 하고 보건행정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의사 출신 변호사들도 많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개선될 것이라고 본다.”

원격의료, 왜 안되나?

—코로나 사태가 처음 발생했을 때 필요성이 대두된 원격진료가 아직 지지부진하다. 어떻게 생각하나?

“의료 관련 법령과 제도가 의료 관련 IT(정보기술) 발전을 적절히 따라가지 못하면서 불필요한 사회적 기회비용이 증가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의료업계와 환자 간의 이해관계가 대립하고 관련 분야 전문가도 부족해 빚어진 현상이라고 본다.

코로나 사태 초기에 외국에서는 원격진료를 많이 도입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의료시스템 개선에 대해 이야기도 못하고 있어서 아쉽다. 코로나 사태 와중에도 원격진료제가 정착하지 못해, 코로나에 걸린 환자들이 병원에도 못가고 원격치료도 못받으면서 재택치료라는 이름 아래 사실상 의료무방비 상태에 방치되어 있는 것은 큰 문제 아닌가? 내가 아는 사람도 코로나에 걸렸는데 병상을 구하지 못해서 집에서 고열에 시달리고 기침하며 견디고 있다고 한다. 원격치료도 받지 못한채 말이다.”

—진료나 치료는 사람의 목숨과 관련된 사항이므로 대면진료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의사에게 직접 대면진료를 받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도서지방이나 산간벽지처럼 의료기관이 희소한 지역에는 제한적으로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시스템을 미리 미리 정착시켰다면 코로나 사태 와중에 집합금지나 영업시간제한과 같은 다소 무식한 행정명령을 많이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원격의료는 코로나 사태 이후 의료혁신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혁신이 더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은 미국 뉴욕시에서 한 어린이 환자가 집에서 부모의 도움을 받으며 체온을 재는 모습. 노트북을 통해 원격진료 시스템으로 연결된 병원 의사가 어린이 환자의 상태를 물으며 대처방법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NYC헬스병원

—의료업계가 기득권을 고수하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어떻게 개선해야 하나?

“정부당국, 의료인, 환자, 의료기업 등 이해관계자들이 열린 자세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공정하고 폭넓은 의견수렴을 거쳐 다수가 동의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제도개선은 결국 의료법령을 합리적이고 촘촘하게 정비하는 작업이므로, 의료법 전문 변호사들이 이해관계자들의 견해 차이를 조정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도 본다.”

코로나 사태 당시 원격진료 시행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사회적 갈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화제는 자연스레 코로나 사태가 잉태하고 있는 다른 사회적 갈등으로 넘어갔다.

‘실손보험’ 회사들이 병원 상대로 줄줄이 소송하는 이유 – 조선일보 (chosun.com)